

팀장: 김보해(동국대), 신현아(부산대), 이시성(부산대), 최다의(제주대), 최용준(고려대), 홍부일(고려대)
어른 연구자는 만화를 읽지 마라
: ‘만화! 읽기 세미나’에 몇 차례 참여하고 나서
홍부일 (고려대학교)
일본의 SF작가이자 BL만화가, 만화평론가였던 나카지마 아즈사(中島梓)는 1978년 11월 월간종합지 『츄오코론(中央公論)』에 「어른들은 만화를 읽지 마라(おとなはマンガを読まないで)」라는 짤막한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쿠리모토 카오루(栗本薫)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인데 『SF수호전』, 『PC통신 살인사건』 등의 작품이 90년대에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약 150권(!)에 달하는 판타지소설 『구인사가(グイン・サーガ)』가 6권정도 한국어로 번역되어있기도 하네요. 사상가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가 창간한 잡지 『사상의 과학(思想の科学)』 1978년 9월 만화특집호에서 책장에 만화책이 스무 권정도 꽂혀있다는 한 평론가가 “나는 만화를 잘 모르지만” 최근 소녀만화에서 SF나 호모섹슈얼이 잘 나간다고 하는데 어째서 레즈비언 만화는 등장하지 않는가 하고 짐짓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나카지마 아즈사는 레즈비언 만화를 줄줄이 나열하면서 “스무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다른 곳에 그러한 만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하고 분노합니다. 차별받는 미디어인 만화라는 공간은 일정한 해석과 정의를 거부하는 혼돈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권위를 세우고 싶은 어른들은 만화를 읽지 말라고 나카지마 아즈사는 일갈합니다.
몇몇 선행연구에 따르면 평론가 김현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 대중, 대중문화 개념의 재정립을 주창하며 그 한 장르로서 만화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쓰루미 슌스케 또한 비슷한 시기에 만화에 관심을 가지며 『한계예술론(限界芸術論)』(1967), 『만화의 전후사상(漫画の戦後思想)』(1973) 등의 저술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둘을 비교해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시대의 또 다른 그물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한편 ‘국내 1호 만화평론가’ 손상익 선생께선 『만화의 세상이 오고 있다』, 『만화로 여는 세상』, 『한국만화통사』, 『망가 VS 만화』, 『한국만화산책』 등의 학술·비평 저작을 남기기도 하셨습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만화 검열 문제와 관련해 시민단체, 국회의원, 정부 등을 비판하며 만화 창작과 관련 학술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애쓰셨다고 합니다. 부천에 소재한 한국만화박물관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만화잡지가 아카이빙되어 있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에 개최된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시, 아주 보통의 하루’를 인상 깊게 관람했는데 도록은 아직인 것 같습니다.
‘만화! 읽기 세미나’도 이런 두근두근거리는 전설 같은 무용담에 홀려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세미나장 김보해 선생님께서도 이 세미나의 기획 취지로 “만화는 지배적 질서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경합하는 날카로운 대항 담론이자, 국가주의적 대문자 역사((major)History)가 미처 포획하지 못한 경계 바깥의 미시적 서사(minor history)와 정동들이 날것으로 분출하는 역동적인 ‘접촉의 지대(zone of contact)’”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니, 동상동몽인 셈입니다. 다만 6월말 첫 모임에서는 ‘현여친 놔두고 구여친한테 찝쩍대는 이누야샤가 너무 똥차다’, ‘애초에 금강이 여주가 아니라서 삔또 상해서 안 봤다’, ‘난 어렸을 때 프리큐어 봤다, 세일러문 뭔지 모른다’ 등등의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의 『일본현대사』를 우선 읽자!는 식으로 첫 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읽어나가기로 한 만화들도 『먼나라 이웃나라』, 『야후』, 『기생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도박묵시록 카이지』, 『시끌벌 녀석들』, 『고양이 절의 지온 씨』 요러한 것들을 늘어놓은 참인데 말이죠. 아무렴 어른들은 만화를 읽지 말라고 하시긴 하셨다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어른스럽게 읽어나가야 하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커리큘럼인 것 같습니다.
『게게게의 기타로』로 너무나도 유명한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현대사』 1권은 일견 ‘학습만화’풍의 필치로 관동대지진에서부터 할인골 전투까지의 일본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거시적 역사와는 분리되어 있는 미즈키 시게루의 자전적 서사가 교차하고 있는 그런 역사만화입니다. 군국주의로 치닫던 쇼와 초기의 광기의 역사와 농농 할멈과의 추억이 배어있는 어린 날의 개인사를 중개하는 것은 ‘네즈미오토코’라는 서사 바깥의 서술자입니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등장하는 ‘광대’ 캐릭터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른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미즈키 시게루의 다른 만화에도 이 네즈미오토코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한편 중학생 미즈키 시게루가 ‘허기신’이라는 요괴와 마주치는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어 정말 대문자 역사의 경계가 흐릿해지기도 하는데요. 미리 훔쳐본 『일본현대사』 4권에서는 버블기의 쇼와 일본에 온갖 요괴들이 출몰하고 있기까지 합니다만 쩜쩜쩜.
교토의 도시샤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 선생님의 만화론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나카지마 아즈사의 글도 사실 그 수업에서 읽었던 것입니다. 수업에서 나누었던 인상 깊은 토론 중 하나는 만화의 컷과 컷 사이 ‘공백’에 대한 수다였습니다. 문장을 통해 어떻게든 앞과 뒤를 연결해나가야만 하는 (설령 그것이 포스트모던한 방식이라 해도) 줄글과 달리, 만화는 컷에서 다음 컷으로 설명 없이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시점이 부재한 그 공백을 통해 ‘해석의 각축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운운 하는 토론이었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흠. 미즈키 시게루의 이 의뭉스러운 역사서술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농농 할멈과 나』도 읽어보자, 『불교파시즘』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하고 마구마구 커리큘럼을 더 흐트러뜨려버린 ‘만화! 읽기 세미나’가 과연 대문자 학술연구들의 각축전에 힘껏 저항할 수 있을까요? 김현의 만화비평, 손상익 선생의 만화사 서술, 만화 검열 등을 소문자 역사로서 다룰 수 있는 학술논문의 모양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이런 잡념을 이어가며 글을 끄적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른 연구자는 만화를 읽지 마!”라는 성난 갈(喝)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세미나 구성원들의 캐리커처는 미즈키 시게루 화풍으로 제주대 최다의 선생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