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한 기억의 조각들
김민지 (이화여자대학교)
일. 첫 강의의 추억
처음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한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첫 강의가 코로나 때여서 학생들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나의 의지와 달리 시간이 흘러 벌써 강의 경력 4년 차에 접어들었다. 4년 차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아직 강의 경력이 부족해서일까, 여전히 수업하는 일은 떨리고 어렵다. 심지어 수업을 하다 가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헤맬 때가 있다. 만족스러운 수업을 하지 못하면 여전히 스스로 자책한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힘내서 수업을 이어간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까닭은 나의 상상력이 꽤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목소리가 안 나오면 어쩌지?”,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시기가 오면 어쩌지?”라는 미래를 상상하며 벌써 걱정하고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당장 일어날 일들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글자가 잘 안 보인다는 상상을 하니 서글퍼져 또 나태함을 반성한다. 이러한 극단적 상상은 역설적으로 내가 존재를 긍정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늘 생각한다.
“아직은 글이 잘 보여서 다행이다…!”
이. 보람
내 수업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학생 있다면 그 수업은 성공한 거다. 나의 수업으로 좋은 영향을 받아 학술적으로 성과를 내고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거나, 글쓰기가 좋아져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나의 한 학기를 보람차게 만든다. 보람이라면 학생들의 변화가 아닐까. 항상 나를 위해 썼던 시간과 연구가 타인을 위한 일이 될 때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점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성격이다. 운이 좋게 학기마다 편지를 써주는 친구들이 꼭 있는데 너무 고맙다. 쳇바퀴 같은 삶을 유의미하게 하는 기록은 언제봐도 나를 설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다음 학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열심히 참여했던 2021년 <발표와 토론> 수업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학생들 모두가 발전한 모습, 적극적인 참여로 완벽한 조발표… 이 학기는 수업 가는 날이 설레고 즐거웠다. 물론 매 수업이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는 이 기억은 희망처럼 작용한다. 여전히 이 기억을 동력 삼아 노력하고 노력한다.
“또 이런 순간이 오겠지?”
삼. 불안
교양 교육자가 견뎌야 하는 감정은 아마 불안일 것이다. 교양 수업을 하다 보면 어느덧 다양한 상상을 한다. 학생들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해 어느덧 나의 삶을 반성하는 지경에 이른다. 간혹 내가 공부에 맞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까지 이른다. 그래도 이 또한 내 선택임을 알기에 다시 시작한다. 불안을 견디는 힘은 모든 결과는 결국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하지만 이걸 적고 있는 순간에 불안하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또 괜찮아진다.
“내가 단순한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사. 어두운 밤을 등지고 들어가고 나가는 삶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연구자의 삶을 따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필 글재주도 없어 남들만큼 좋은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버거운 일이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어 나는 그저 주어진 현실을 잘 살아가기에 집중한다. 특히 논문 쓸 때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성실하기’밖에 없었다. 규칙적인 삶만이 타고난 천재가 아닌 내가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 하나로 어찌저찌 졸업했다. 혹시 나와 같이 게으르고 타고난 재주가 없다면 그나마 공정하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큰 문제는 현재의 나는 매우 게으르다.
“8시간 중 순공시간이 1시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오. 요즘
매일을 보람차게 살면 참 좋으련만…요즘 누워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지난날에는 먼 훗날을 꿈꾸고 미래를 그렸다면 이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을까 끝없이 고민한다. 올해는 조금이라도 웃는 일이 많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연구와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선생님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하다. 다른 선생님들 어떨 때 행복을 느낄까? 혹여나 이 두서없는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이 계신다면 조언을 주면 고마울 것 같다. 그럼 나는 커피를 손에 쥐여줄 것이다. 올해도 간절히 바란다.
“올해는 행복을 많이 느끼는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