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시티를 NCT로 알았던 선생이 체대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 생기는 일
선민서 (고려대학교)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체대 학생을 맡아 비대면 글쓰기 강의를 진행했다. 결과는 불만족스러웠다. 새벽운동으로 지친 학생들에게 온라인으로 수업 참여를 독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년 후에 나는 한 번 더 체대 강의를 맡았다. 오프라인 강의로 바뀌자 상황이 약간은 나아졌다. 어떤 학생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도 동시에 동물의 타자화 문제를 다룬 준수한 논술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목을 가누지 못하고 책상을 베개 삼아 잠들기 일쑤였다. 교수자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한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다. 체대생들은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MVP 됐다고 생각하고 인터뷰 하기’ 같은 것을 하면 된다고 말이다.
세 번째로 체대 강의를 맡았을 때 나는 비로소 체대 학생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체대생은 전국체전, 전지훈련 등으로 빈번하게 유고결석을 신청한다. 도망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코치님 지시로 매수업마다 교수자에게 사인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학술적 글쓰기를 이해하고 연습하는 일에 그들이 열정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MVP 수상소감을 학기 내내 발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때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들려왔다. 지난 여름, 파리올림픽 양궁 금메달 5개라는 쾌거가 대한양궁협회의 체계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보도도 귀에 꽂혔다. 고심 끝에 나는 글쓰기 공통 화제를 ‘K-스포츠의 발전 방안’로 정했다. 자신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힘든 일정 중이라도 바짝 의욕을 내서 글을 쓰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학생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글에는 그 전에 체대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에는 듣기 어려웠던 현장의 이야기가 있었다. 골프선수 학생은 최근 캐디피와 그린피의 급격한 인상으로 골프선수의 꿈을 접는 유소년 선수들이 많다고 전해왔다. 피겨나 쇼트보다 인기가 적다는 이유로 전용 경기장을 갖기 어렵다는 스피드스케이팅선수 학생의 이야기에서는 비인기종목 선수로서의 소외감이 느껴졌다.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이나 운동장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토로하는 여자축구선수 학생의 글에는 오랜 시간 집적된 울분과 설움이 들어있었다. 학생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절감하는 만큼 개선 방안을 찾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최근 트렌드에 맞추어 숏폼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씨름의 멋진 장면들에 매료되는 대중들이 분명 늘어날 것이라는 씨름선수 학생, 비인기종목일수록 스포츠 관광 사업과 연계해야 한다는 통찰을 전달했던 조정선수 학생이 떠오른다. 비인기종목에도 평등하게 중계권을 제공할 때 특정 종목에 국한되지 않는 K-스포츠의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알파인스키선수 학생의 글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말문이 트였는지 학생들은 공통 화제만이 아니라 자유 화제로 논술문을 쓰고 발표하는 일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어느 씨름선수 학생이 ‘오버트레이닝의 위험성’에 대해 발표할 때의 일이다.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는 학생에게 질문했다. “그럼 트레이닝을 하다가 너무 힘들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학생은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쉬어야죠.” 그래서 나도 그 주 주말에는 논문을 쓰지 않고 쉬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떤 학생은 이번 시즌 맨시티(맨체스터 시티 FC)의 부진에 대해 분석했다. 학생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NCT를 떠올렸지만, NCT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디펜딩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 입을 꾹 닫았다. 손흥민과 토트넘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맨시티의 부진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수업을 마친 후에 나는 남편을 통해 맨시티의 대표선수 케빈 더 브라위너가 ‘덕배’라 불리며 한국 팬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손흥민, 김연아, 혹은 덕배 같은 스타가 아니었지만, 이번 학기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였다. 지면 관계상 언급하지 못했지만, 이번 학기 학생들의 글에는 K-스포츠가 단시일에 성장할 수 없으며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작은 챔피언들의 주장에 힘입어 늘 강의와 논문을 핑계로 운동을 뒤로 미루어왔던 나는 조깅을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세 번째 체대 수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