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하는 마음] 성적 평가표와 사망 진단서

성적 평가표와 사망 진단서

류상범 (충남대학교)

“교수님 혹시…… 시험을 다른 날 볼 수 있나요?”

짜증이 났다. 짜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찰나의 순간에 너무도 복잡한 생각이 떠올랐다. 심지어 학기 말이었고 체력은 바닥이었다.(심지어 아침 수업이었다.) ‘또 어떤 엉뚱하고 별난 이유로 시험을 다른 날 보자고 할까.’ 머릿속은 이미 온갖 규정을 떠올리며 선제적으로 방어할 요령이었다. 

“왜죠…?”

“어머님 임종이 가까워서 제가 시험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찰나였다. 머릿속에 여러 겹의 방패를 둘렀다고 착각했다. 사실은 내 발목 밑에 수많은 지뢰를 묻던 중이었다. 물론 그 학생은 이런 나의 속을 알지 못할 것이다. 텀이 있었지만 서둘러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건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임종이란 사건에 당황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심고 있던 여러 지뢰를 그 학생은 몰랐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내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수업을 마쳤고 그 학생에게는 원격으로도 시험이 가능하다고 안내하였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말을 건네며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타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한 학기가 지나갈 동안 나는 그 학생에게 그러한 사정이 있는 줄 몰랐다. 최근 결석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체 휴강인가 싶었다. 한 번은 요즘 결석이 잦은 이유에 대해 묻기도 했었다. 그래도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떠한 상황인지 물었다. 감히 쉽게 물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형편이 매우 어렵다. 도움을 받을 어른이 거의 없다. 만약 장례를 치르게 된다면 누나와 자신이 대부분의 것을 감당해야 한다. 무언가 도움이 될 것이 없는가? 급하게 학과 조교 선생님께 관련하여 학생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여쭈었다. 인터넷을 통해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몇 가지 지원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급히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면서도 생각이 많았다. 이런 메일을 보내는 것이 맞을까? 학생이 원치 않는 것은 아닐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은 아닐까? 어떻게 메일을 보내야 하는가?

메일 보내기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그 학생의 삶에 대해 모른다.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도 모른다. 내가 알려주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거나 어떤 이유든 조건이 맞지 않아 무용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세상에 나 혼자구나’라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아예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례식장에는 가보지 못했다. 보강 일정 때문에 타 지역에 머물고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답장이 왔다. 감사하다는 메일이었다. 복잡했다. 내가 잘한 것이 맞나? 선생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한 게 맞나? 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 한 것이 맞나? 그런 와중에 감사 인사를 받는 것이 괜찮나? 미묘했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적절한 답신을 보내지 못했다. 


대학에서 교양 교과목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 강의라는 형식 아래 나는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다. 사실 이렇게 무미건조하지는 않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얄팍해질 수 있다. 언제 민원이 들어올지 모르니 출석, 지각, 결석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성적 이의 제기를 방어하기 위해 점수화가 쉽게 시험 문제를 만든다. 강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계량화된 각종 지표 뒤로 사람은 사라진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어떤 상태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어떤 감정인지 진실 되게 알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언제든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시험을 다른 날 볼 수 있는지 묻는 것 이면에는 숱한 고민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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