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검은 소녀 –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 (지은이), 마심리 레일라 (옮긴이), 서경석 (감수)

도서 정보

  • 저자: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 (지은이), 마심리 레일라 (옮긴이), 서경석 (감수)
  • 출판사: 틈많은 책장
  • 출판 연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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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이란과 튀르키예, 소비에트 사이의 국가 아제르바이잔- 마침내 한국의 독자를 만나다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여러 문화와 종교가 교차하며 중첩된 지역이다. 고대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이후 이슬람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중세에는 튀르크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근대에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지배로 사회주의 문화가 더해졌다. 1980년대부터 거듭된 반소 시위로 1991년에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설립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꽤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으로 양분된 정치적 지형도 속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던 아제르바이잔과의 교류는 불가능했다. 대한민국과 아제르바이잔의 정식적인 교류는 1992년부터 이루어졌는데, 상호 국가에 대사관이 설치된 것은 2007년에 이르러서이다. 양국 사이의 정치적·경제적 교류를 넘어 사회·문화적인 교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매개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아직 멀리 있는 나라인 아제르바이잔과 그 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의 「검은 소녀」를 소개한다.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는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20세기 아제르바이잔 아동 문학의 기틀을 다진 작가로도 평가받는다. 하층 계급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 모순과 차별을 폭로하고 있는 「검은 소녀」는, 1913년 잡지에 연재된 이후에 여러 번 개작되면서 100년 넘게 아제르바이잔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아동 문학이다.

◆ “할아버지, 저 부인은 왜 자기 딸이 저랑 놀고 이야기하는 걸 못 하게 하나요?”
소녀의 시선에 포착된 부당한 어른들과 잔혹한 세계

「검은 소녀」는 오랜 시간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애독된 텍스트이자 영향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 활용한 것은 1934년 버전인데, 아훈도프의 비판적 사회의식과 더불어 작품에 영향을 미친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또한 감지할 수 있는 버전이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 문학사의 맥락에서 「검은 소녀」는 근대 아동 문학의 출발점이자, 문학과 교육, 이데올로기가 만나는 접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은 국가와 제도의 요구에 따라 조정된 텍스트인 동시에, 그러한 조정의 흔적 자체가 문학사의 중요한 증언으로 기능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검은 소녀」는 단순히 ‘잘 쓰인 이야기’를 넘어, 읽혀 온 방식까지 포함해 해석되어야 할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본 번역은 1934년 판본을 토대로 하여, 이상화된 원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재의미화된 텍스트로서 「검은 소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해제 중에서

1934년 판본은 소비에트 체제하 문학 정책의 영향이 가장 많이 반영된 텍스트로 평가된다. 그로 인해 작품 속 인물들의 성격은 훨씬 더 단순해지고, 계층에 따른 대비는 훨씬 더 강조된다. 이는 당시의 독자에게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즉각적으로 이해시키고 소비에트 사회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일면 체제에 협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이는 「검은 소녀」가 이데올로기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의미화될 수 있는 주제를 던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세계 속에 자라면서도 폭력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뜻깊다. 검은 소녀와 친구 아그자 하늠은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어른들의 목소리에 복종하지 않으며, 서로의 차이를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따뜻한 우정을 나눈다. 계층에 따른 삶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구분 짓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100년 전 「검은 소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는 과연 ‘검은 소녀’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어른이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의 사회인지를.

◆ 틈에서 찾은 이야기, 틈 많은 책장에서 보내는 편지

역자와 이 책의 도서 분류 기호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의논한 적이 있다. 나는 ‘기타 문학’에 해당하는 890으로 생각했는데, 역자는 ‘일본 문학 및 기타 아시아 문학’에 해당하는 830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검은 소녀」의 도서 분류는 830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과연 어떤 분류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리적으로 동유럽과 맞닿아 있고 중동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카스피해를 사이에 두고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와도 인접해 있다. 이렇듯 많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문화의 뒤섞임과 충돌, 아슬아슬한 공존은 「검은 소녀」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란령 남아제르바이잔과 북부 아제르바이잔의 분리, 집시들, 러시아인 가정교사, ‘아가’나 ‘베이’와 같은 봉건 영주의 잔재 등… 번역본으로 택한 1934년 판본은 소비에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버전이라고 하지만 작품 내에는 그 이데올로기만으로 봉합되지 않는 다양한 요소가 흔적을 드러낸다. 「검은 소녀」는 내가 처음 만난 아제르바이잔이자, 단일한 특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아제르바이잔의 내력을 여기저기 감추고 있는 텍스트였다. 과연 독자들은 「검은 소녀」에서 어떤 아제르바이잔을 만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저자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 (Süleyman Sani Axundov, 1875.10.03~1939.03.29)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의 창작 활동은 1899년에 발표한 희극 「탐욕가」로 시작된다. 이후 소설가로서도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으며, 「연회」(1905), 「자유의 별」(1905), 「꿈」 (1905) 등 초기 단편들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 아래 집필되어 작가의 현실 인식을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들로 손꼽힌다. 또한 1909년 발표한 단편 「앵무새」에서는 모방과 모국어 경시 문제를 앵무새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다.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는 20세기 아제르바이잔 아동 문학의 기틀을 다진 작가이기도 하다. 1912~1914년 사이에 발표한 「아흐메드와 말레이카」, 「압바스와 제이넵」, 「누라딘」, 「검은 소녀」, 「에쉬레프」 등이 포함된 작품집 『무서운 이야기들』은 아동 문학의 형식과 내용, 문체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며 이후 세대의 문학적 기반을 마련했다.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는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근대 계몽주의의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사회적 모순과 시대 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 활동으로 1932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노동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사회 비판적 시선과 계몽적 이상, 그리고 따뜻한 인간 이해를 결합한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아제르바이잔 문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역자 마심리 레일라(Masimli Leyla)
바쿠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라시아 투르크 연구소, 애듀니티랩 연구소,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아제르바이잔 문화 강의를 했다. 번역 저서로 『태양의 사랑』,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가 있다. 2025년에는 서울 명예시민에 선정되었다.

감수 서경석
서울대학교 인문 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24년 8월까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근무했고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근대문학사 연구』, 『한국 근대 리얼리즘문학사 연구』 등이 있으며 우리말글학회 회장, 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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