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대 연구자 에세이] 김강사의 HK체험기 (4) – “퍽 더 연구 비즈니스”

연구자의 Vlog 📹 : 읽고 쓰고 산책하라 🏃‍♂️🏃‍♀️‍➡🤸‍♀️


HK연구교수의 학기당 최대 강의 가능 시수는 6학점이다. 명분은 연구사업에 집중하라는 건데 그건 알겠다쳐도 문제는 강의료다. 국립대가 아닌 이상 강의료는 1학점당 5만원선이다. 연고대가 그러니 나같이 듣보대에서 강의하면 3만원 받는 수도 생긴다. 완전 치사하게 어떤 대학은 연구교수가 강의하면 그걸 또 반으로 깎는다. 3학점 강의 하나 = 3만원 곱하기 3학점 곱하기 4주 하면 36만원인데 그 절반이면 십팔이다. 

HK에 대해 할 말은 10%도 못했지만 마지막 연재라 급반전해서 미담을 꺼내본다. 정규직 교수 다 뽑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연구교수님들도 떠나고 갈 데 없는 쩌리들만 남았다. 사업연한이 얼마 안남아서 늦봄의 폐허 같은 날들이었다. 사업이 끝나면 일자리도 끝나는 나는 편안했다. 계획서에 쓴 일들을 50%도 못했다고 단장님이 전전긍긍하는게 고소했다. HK교수들도 그리 안달하진 않았다. 태뉴어 트랙 들어가면 짤리기는 쉽지 않으니까. 임용과정 문서가 다 사라진 정치인 자녀도 잘 붙어 있고, 저서가 표절에 걸려서 신문에 나온 교수도 다 잘 붙어있잖아. 에, 저는 오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예.. 수고하십시오 예.

그렇게 만끽할 수 있는 평화로운 시기에 문화인류학, 철학이나 신학, 외국문학 공부하는 선생님들하고 공부 이야기하는게 그렇게 좋았다. 대학원 처음 들어왔을 때 자주 느꼈던, 이제는 닳고 닳아서 홀랑 까먹고 있었던 그 느낌.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과 환희가 봄 아지랑이처럼 다시 피어올랐다. 담배타임과 생맥 한 잔 마시면서 듣는 얘기가 어찌나 좋던지. 아직도 나는 모르는게 이렇게 많고, 이런 걸 알게 되면서 나날이 즐거움이 소복소복 쌓여갈 수 있는데.  그때가 진짜 좋았는데 구체적인 대화내용을 말하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니까 생략한다. 

HK 3.0은 정규직을 안뽑아도 된다. 그게 무려 교육부와 연구재단과 각 대학과 대학부설 연구소들의 의견수렴을 거친 결정이다. 정규직 뽑든 말든 상관 없는데 비정규직 처우개선 같은 건 아예 관심이 없는 걸 보면 이게 인권의 사각지대 아니냐. 한국 인문학의 미래는 이제 온전히 1년 이하 계약의 비정규직들의 어깨에 매달리게 되었다. 해방노예인 내가 HK 3.0이 뭐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검색해서 연구재단 링크 들어가보니 404 NOT FOUND가 뜬다. 이건 분명히 자기들도 그게 뭔지 모르는 거다. 인문학에는 HK만 있는게 아니라 전국 대학에 학과 정규직 교수들도 있잖아요? 아 그런가요? 그런데 그분들 뭐 하시는지는 제가 잘 몰라서…

강 같은 평화를 누리던 날들에 들었던 양혜왕 이야기가 생각난다. 맹자는 맹자가 쓴 책 이름인데 맹자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맹자 아닌 등장인물이 양혜왕이다. 양혜왕은 맹자가 똑똑하다는 소식을 듣고 인문학의 진흥을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맹자를 모셔왔다. 그래서 양혜왕이 맹자님이 “불원천리”하고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좋은 말씀 좀 해주십쇼 라는게 맹자의 시작이다. 맹자는 맨날 양혜왕을 혼낸다. 자기가 쓴 책이니까 뻥쳤을 수도 있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강사들이 도탄에 빠지고 박사들이 길거리에 죽어 나자빠져 있는 상황의 책임에 대해 물었다. 양혜왕은 “내 탓이 아니요, 시대의 탓이오.”라고 대답했다. 맹자가 어떻게 양혜왕을 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교육부 탓인가? 당연하죠. 연구재단 탓인가? 당연합니다. 정규직들 탓인가? 그렇습니다. 정규직에 눈 뒤집혔던 나들 탓인가? 아니라곤 못하죠. 정책의 장기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선출제 민주주의(?)와 규정과 방침에 따랐을 뿐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관료제의 콜라보. 음식쓰레기 종량제와 차이가 없는 정량적 성과평가에 저항하지 못하게 된 우리들. 나들은 밥이라도 빌어먹기 위해 선행연구 없는 분야를 간신히 찾아 얇게얇게 노랑장판이나 깔며 KCI 카운트를 올린다. (아 참, 양비론은 아니고 가장 나쁜 놈은 돈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부다.) 

생존환경의 피폐화와는 별개로 한국문학 연구에서 개인별 연구수준의 정점은 올라갔다. 8~90년대의 방식이 집체적 연구의 시너지였다면, 2020년대의 연구는 높아진 정보접근성을 잘 활용하는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되고 있다. 수량경쟁이 불러오는 질적 저하는 총량적으로는 보았을 땐 맞지만 특출난 개인이 뽑아내는 성과의 정점은 더 높아지고 있다. 학계 내 격차는 위아래로 벌어진다. 박사를 넘어 진화한 박박사님들이 있다.(10명 안된다) 박박사들은 그래도 학자로 살아가겠지만 약한 박사들은 진짜 맥도날드라도 가서 일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같은 개소리로 끝을 맺진 않겠다. 그냥 다들 잘 알았으면 좋겠다. 연구재단과 학진 시스템 따위의 말은 다 퉁치는 말이라 분석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건 그냥 한 번 욕하고 덮는 거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정말 잘 알았으면 좋겠다. 정규직은 교수님이라고 하고 비정규직은 곧 죽어도 박사라고 부르는 요상한 권위주의, 군복무처럼 돌아오는 학회 간사와 별의별 하는 일의 좆같음, 자기 논문숫자 자랑하는 사람과, 또 ‘차력쇼’라고 폄하하는 사람의 수동공격성, 자신의 피해의식을 눈 앞의 동료에게 투사하는 자신의 못남 같은 것들을 말이다.   

(끝)


공모 부문: 연구자 망생일기

작성자 : 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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