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 지금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전용숙 (대구대학교)
산을 오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떠나는 이도, 남겨진 이도 각자의 슬픔을 짊어진다. 이별의 무게를 짐작할 수가 없다. 오늘은 그 무엇보다 먼저 간 이 아이 생각만 하리라. 모든 번뇌를 잊고 다른 세상에서는 편안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눈물이 날까 봐 괜히 눈을 껌뻑껌뻑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친언니처럼 따뜻한 지인의 소중한 아이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연락 두절이 되었던 언니 소식을 나는 다른 이를 통해 들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에 말을 잃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위로조차 할 수 없어 침묵하다가 석 달 후 겨우 아이를 보러 갔다. 언니는 아이의 위패를 경주의 작은 암자에 올렸다. 그리고는 토요일마다 아이를 찾아 산을 오른다고 했다.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는데 내가 전화한 날 그 시간만큼은 이상하게 전화를 받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침 8시 30분 남산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산을 올랐다. 중턱 즈음 갔을 때 한 부부를, 조금 더 오르니 또 한 부부를 그리고 암자에 거의 도착했을 때 긴 나무 비로 계단을 쓸고 있는 한 분까지 무슨 사연이 있는 분들인지 토요일마다 암자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10시 30분이 되자 법당에서 울려 퍼지는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마주 보이는 산 능선을 돌아 마음을 울린다. 암자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본다. 무언가 단단히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무엇이 꿈 많을 청년을 벼랑으로 내몰았는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이후 10대, 20대의 자살률이 10% 가까이 증가하는 추세다.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피할 수 없는 불안을 마주한 숫자다.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화는 초, 중, 고등학교 기간 동안 오로지 입시를 위한 공부만을 하도록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그렇게 헉헉대며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숨을, 숨을 좀 쉬게 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면 대학은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끝없는 경쟁의 압박이 아니라 삶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는 대학이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학생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작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내가 속한 대학에서 느닷없이 교양교육체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독립 단과대학을 폐지하고 교양교육이 본부 예하 센터로 편제되며 교양 필수는 물론이고 영역별 교양 이수 요건을 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에서는 그동안 교육체계를 만들고 교양교육 독립 기구로 교양단과대학을 구축하기까지 여러 노력이 있었다. 교양기초교육원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지원했고 대학들은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교양교육과정을 설계해 나갔다. 교양교육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다원적 관점을 수용하고,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학문적 성취를 넘어,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 대학의 본질을 저버리고 경제 논리를 강조하며 실용 학문에만 치중하고 교양과 기초학문을 축소하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교양교육과 기초학문은 대학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직결되며, 학생들에게 인간다움과 사회적 책임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대학이 경제 논리에 매몰되어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소홀히 한다면,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과 도덕적 기반이 약화 될 위험이 크다. 특히 교양교육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학생 정체성 형성의 핵심적 토대가 되며, 학생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전인적 성장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얼마 전 아끼는 제자 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해 졸업한 현이는 생명과학 전공으로 식물 유전 공학에 관심이 있으며 인문학 수업에도 흥미를 가진 학생이었다. 그래서 전공은 물론 명저 읽기 수업과 사고와 표현 수업 등을 즐겁게 듣던 학생이었다. 현이의 목소리에서 열기와 설렘이 전해졌다. 서울인데 Apple.inc에서 세운 직영점 애플스토어를 들러서 최신 제품을 보고 롯데 잠실점에 있는 무인로봇 ‘b:eat’ 카페에 들러서 커피도 마셨다며 설을 풀던 현이는 곧 글로벌 인재 포럼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보고 즐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제 여기 대학에는 현이가 다니던 생명과학과가 없어졌으며 교양교육체계와 교육과정도 축소되었다.
적어도 대학은 사람을 죽이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 과제를 교양교육이, 인문학이 함께 풀 수 있지 않겠나. 대학이 정부와 교육부가 이 길을 내줘야 하지 않겠나. 만 가지 생각이 든다. 말없이 담담히 불공을 드리고 점심공양을 하고 휘적휘적 산을 내려온 언니는 한적한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하염없이 울었다. 좋은 세상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 책임이란 생각에 다 내 책임 같아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