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하는 마음] 교양의 조건

교양의 조건

정미진 (경상국립대학교)

 ‘감히 교양 따위가…’

3년 전부터 출강하기 시작한 대학의 첫 번째 워크숍 자료집에는 지난 학기의 강의평가 점수와 주관식 응답이 긍정 답변과 부정 답변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부정 답변들 사이로 유달리 크게 보이는(결코 큰 글씨로 인쇄된 것이 아니었다!) 코멘트가 바로 저 문장이었다. 목적어와 서술어까지 몽땅 생략한 저 짧은 문장이 교양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었다.

사실, 교양 강사로 10여 년을 강단에 서면서 교양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니, 모를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지난 학기 종강을 앞둔 즈음에도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나기 전에 먼저 나가봐야 한다고 나에게 통보(분명 통보였다.)를 한 일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내게 학생은 ‘전공 시험이 있어서’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수업 중간에 나가는 것은 너의 선택이고, 너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거라 짧게 말했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은 터라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교양 과목을 전공 과목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 전공 과목이 더 어렵고 과제가 많기 때문에, 전공 과목은 추후 취업에 중요하게 작용할지도 모르니까. 이것은 교양 과목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도 좋은 성적을 받으려는 경향, 이른바 ‘꿀교양’에 대한 선호로 나타난다. 꿀교양은 ‘꿀을 빠는 교양’의 줄임말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쉽게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편안한 교양 수업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업이 ‘꿀교양’인 것일까. 대략 짐작하는 바 있지만 그 실체가 궁금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는 조카와 그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해당 인터뷰의 객관성 및 신뢰성은 문제삼지 않지 않도록 하자.) 꿀교양의 절대조건은 학업 스트레스의 강도와 학점 관리의 용이성이다. 학업 스트레스를 좌우하는 것 중 하나는 과제(혹은 시험)의 양과 질이다. 이에 대한 선호는 개별 성향에 따라 다른데 어떤 학생들은 하나 있는 어려운 과제보다 매주 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과제를 좋아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장 선호하는 것이 과제가 적거나 아예 없는 경우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수업 자체의 ‘빡셈 정도’이다. 여기에는 양적인 수업 시간의 길고 짧음도 작용하지만 1시간 내내 수업을 하고 진도를 많이 나가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시험 범위의 증가는 학업 스트레스와 직결된다.) 대신 매 순간 집중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수업을 따라갈 있는 수업, 너무 빼곡하게 진행되지 않아 시험 범위가 많지 않은 수업에 대해 부담을 덜 느낀다. 그 외에도 팀 프로젝트 진행 여부도 중요하다. 팀 프로젝트는 개인의 노력이 성적이라는 성취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점, 그리고 ‘무임승차’(팀 프로젝트나 그룹 과제에서 일부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이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구성원들이 수행한 작업의 성과를 동일하게 공유하는 상황)하는 학생의 존재,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학생들에게 ‘꿀교양’은 노력에 비해 쉽게 성적을 받을 수 있고, 공부 분량이 적고, 내용이 쉬우며, 조별 과제가 없는 재미있는 수업이다. 여기에 교수자의 친절함은 옵션이다.

대학의 교양 수업에 대해 이런 인식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이제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 대한 수식은 낡디낡은 서랍 속에 파묻힌 지 오래이고, 대학은 조금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지나야 할 관문 정도로 인식된다. 높은 취업률을 보장하는 전공, 업무에 대한 확실한 경제적 보상이 뒤따르는 전공이 우선시 되고, 순수 학문이나 인문학은 경제 논리에 따른 실용적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실에서 자꾸만 뒤로 밀려난다. 이런 현실에 맞물려 교양 수업은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졸업 이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과, 쉽게 ‘해치우고’ 싶지만 성적은 잘 받고 싶은 이중적인 욕망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교과가 된 것이다.

벌써 2년이 지난 일이 문득 떠오른다. 성적 입력을 하고, 학생들의 이의신청에 답해주는 고단한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을 돌렸을 무렵이다. 학기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과 약간의 해방감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출강하던 한 학교에서 더 이상 강의를 배정해 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이 있기 며칠 전에 재임용 서류를 제출했던 터라 순간 억울한 감정이 먼저 솟구쳤었다. 그러나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비롯한 몇몇 교양 필수 과목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이유를 듣는 순간 억울함 사이로 문득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양이라며 대학의 교양 수업 워크숍에서 언급되었던 과목들이 스쳐지나갔다. 학교는 소위 ‘인기 교양’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었던가. 

대학 교육의 주체가 학생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교육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만 남긴다면, 지금 당장 좋아보이는 것만 남긴다면 나중에 남게 될 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이명이 내 귀속을 강하게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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