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Vlog 📹 : 읽고 쓰고 산책하라 🏃♂️🏃♀️➡🤸♀️

때는 2020년 겨울, 당시 나는 아침마다 지옥철을 뚫고 역삼동 코딩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좁은 강의실에 다닥다닥 붙어서 강사와 수강생 모두 마스크를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250만원 정도를 내고 등록한 학원이었는데 지금 기억하는 것은 print(“hello world”) 밖에 없다.
무작정 코딩학원을 찾아간 데에는 개발자 취업붐을 따라간 것도 있지만 역시 먹고 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주요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취업을 생각하는 3학년 이상 인문학 학부생들은 인문대를 ‘X문대’, 스스로를 ‘X문대생’이라고 부르며 소위 스펙쌓기에 열중하거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학부는 인문학으로 입학했지만 취업을 위해 경영학을 부전공해놓은 상태였다. 경영학 수업을 들으며 나에게는 경영자의 자신감, 당당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점을 채워 듣고, 대외활동을 하고, 경영학회를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했다. 4학년 무렵 저녁 늦게 과도서관에서 필수 자격증 중에 하나였던 컴퓨터활용능력 1급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장그래마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컴활 일타 강사 유동균 선생님의 독특한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학생들의 가장 가까운 위로자는 인강 강사들이다.
코로나에 걸려 누워서 진로 고민을 다시 했다. 뭐 먹고 살지. 먹기는 잘 먹고 다닐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뭔가 좀 서럽다.. 불안하다.. 세계가 망해가고 있어!! 아무튼 혼자 열에 들떠 방구석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나의 진로, 아니 진로라기보다는 이 세계의 운명(?)과 존재의 의미, 무의미, 빈부격차, 차별과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 사회, 신비로운 우주 등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때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주변에 상담을 할 선배나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인문대 대학원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몸의 건강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결정된다.
지금 나는 공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짜 연구자이다. 이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방구석에서 혼자만 하던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각들까지 하게 되는 게 인문학 공부인 것 같다. 과거나 지금이나 너무 놀랍고 좋고, 좋지는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사람들, 선생님들이 너무 많다. 세계가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많은 돈을 벌고 싶다. 공부만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모 부문: 나는 어째서 대학원생이 됐는가
작성자 :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