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대 연구자 에세이] 연구자의 연구: 비 바라기

연구자의 Vlog 📹 : 읽고 쓰고 산책하라 🏃‍♂️🏃‍♀️‍➡🤸‍♀️


석사를 얼레벌레 졸업하고-그러나 도대체 얼레벌레 졸업이란 가능한가 싶지만, 아무튼 따지고 보면 그랬다-먹고살겠다며 노동으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은퇴한 부모님께 도움받기 싫었고, 혼자 잘 살아보고 싶었으며, 잘 살아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정말로 잘 안될 때 마지막 동아줄처럼 사교육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동아줄은 튼튼했다.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가끔 본업 모먼트가 나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접하기 힘들 얘기도 늘어놓았다. 그럴 때면 학생들은 최면에 걸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알아듣는지는 몰라도 꼭 흥미를 가지는 누군가는 있다. 무엇보다 내가 즐겁다. 그렇게 국어학원에서 터를 잡으니, 박사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돈 문제가 불확실한데도 박사는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때마침 오너직을 제안하는 원장님에게, 알겠으니까 나 대학원 병행할 수 있게 도와달라 말했고, 원장님은 ‘탈해 내가 너 박사 만들어줄게’라며 공지연-공감지지연대라는 뜻-하셨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그래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를 되뇌었으나 마음은 든든했다.

은퇴를 앞둔 지도교수님은 내가 바로 박사를 하길 바라셨더랬다. 직접 지도한 박사가 손에 꼽지만, 마지막으로 나를 지도하고 싶으셨다 했다. 하지만 생업을 향한 내 의지가 워낙 확고해 보여서-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렇게 확고했는가 싶지만, 그때는 또 그래야 했을 것이다-더 붙잡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돈 안 되고 돈 내는 인문계 대학원을 강권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그때 좀 더 제안하셨다면 어땠을까, 결국 다시 박사를 하려는 지금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도 세상에는 어떤 타이밍이나 시기란 게 있고, 당시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언젠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귀환하곤 한다.

그런데 왜 박사를 하고 싶은 걸까? 애초에 석사는 왜 갔지? 하면…내 학부를 먼저 되짚어봐야 한다. 극우 기독교와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기조로 삼아 실무형 인재 양성에 집중했던 그 학교에는 순수학문으로 된 전공이 없었다. 본업 외에 다른 영역-이를테면 예체능-은 취미로만 남겨 두라는 기성세대 중상류층 부모처럼, 순수학문은 교양 수준으로만 배우고 취업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 빨리 노동시장으로 뛰어들라는 식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가 추구하고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오히려 ‘실무’와는 거리가 먼 전공을 택해 대학원에 갔다. 이렇게만 말하면 순전히 거부감 때문에 튕겨나듯 대학원으로 날아간 것 같지만, 또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거기에는 취업에 대한 불안 자체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럼, 거부감과 불안이 해소된 지금, 왜 굳이 또 연구하려는 걸까?

석사 전후의 생각과 소거법을 거쳐 생각건대 그 이유는 앎과 믿음으로 요약된다. 어두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깊이와 규모를 갖춰 알아보고, 앎과 모름의 경계를 면밀히 정하고 싶었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데에서 확실히 모르는 것을 추리고, 어둠의 첨단에서 한 발짝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넓힌 앎의 곳곳을 실뜨기처럼 이으면 가끔, 아주 가끔 성좌처럼, 내가 파악한 영역이 저 너머를 잠깐 비춘다. 이런 별뜨기에서 간혹 오는 미약한 빛이 세계의 한구석을 밝히고 바꾼다고 믿는다. 믿고 싶음에 가까운 이 작업은 ‘실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에 개입한다.

이런 믿음에는 품이 든다. 보상이 따를지 알 수 없고, 심지어는 보상을 바라서는 안 될 것 같은 이 일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믿음은 연구자로 하여금 한 글자라도 더 읽고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 노동 아닌 노동과 빼곡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그렇게 다들 자기만의 빛을 가다듬는다.

과연 우리의 앎은 정말 우리를, 세계를 자유롭게 할까? 정말 변화를 가져올까?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서문을 수행문으로, 질문을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다시 읽으려는 노력은 여전하다. 척박한 토양에는 심연이 틈틈이 스며 있고,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그렇게 나는 비와 빛을 좇아 다시금 기우제를 준비한다.

흠뻑 젖은 대지의 물빛 표면이 하늘을 담는다, 언젠가.


공모 부문: 나는 어째서 대학원생이 됐는가

작성자 : 탈해

연구자 에세이 공모하기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