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Vlog 📹 : 읽고 쓰고 산책하라 🏃♂️🏃♀️➡🤸♀️

인문학자란 사이오닉 12등급 문돌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경기도 오동나무골에 인문학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능했다. 그를 찾는 대학 관계자들은 으레 이 인문학자에게 사업계획서의 아젠다 서술을 부탁하거나 자기들이 구상하는 사업에 적합한 핵심가치, 키워드, 혹은 연구소장 인사말 같은 것들을 부탁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어로 논문을 못 써서 A&HCI도 없고, 매양 계약직으로 연명해온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어느 때 교육부에서 각 대학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인건비 내역을 조사해보고 난 교육부 관계자는 크게 노했다.
“국제등급학술지 논문도 없고 노벨문학상도 못 타는 인문학자 따위가 어찌 이리 정부지원금을 축냈단 말이냐.”
이렇게 호통을 치고 나서 그 인문학자를 당장 쫓아내고 공대에서 AI 자연어 처리를 전공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라고 했다. 지적사항을 전달받은 대학 관계자는 속으로 그 인문학자를 무척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지적사항을 무시할 방도가 없으니 어찌하랴. 차마 계약을 당장 해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육부 방침을 무시할 수도 없어, 일은 매우 딱하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른 인문학자는 밤낮으로 술만 퍼댈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그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당신이 평생 앉아서 보고서나 쓰고 연구소 이름이나 짓더니 이제 쥐꼬리만한 연봉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되었구려. 에이! 더럽소. 인문학 인문학 하더니 그 인문학이라는 것이 한푼 값어치도 못되는 것이로구려.”
그 마을에는 대기업 회장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인문학자가 봉변을 당하게 된 내력을 듣고 전략기획실에서 의논이 벌어졌다.
“인문학자란 아무리 가난하고 돈도 못 벌어도 잘만 가져다 쓰면 보탬이 되는 것. 우리는 아무리 좋은 폰을 개발해도 항상 그 검은색 폴라티 입고 설치던 양반이 만든 폰만한 평가를 못 받는단 말야. 아재들이나 쓰는 폰이라 멸시당하고, 자꾸 이상한 밈이나 돌고… 그런데 지금 인문학자가 계약 유지를 못해서 군색한 지경이 되었다니, 이 기회에 우리도 그 인문학자라는 타이틀을 사서 우리 브랜드 이미지에 붙여보는 것이 어떤가?”
의논을 매듭지은 회장은 즉시 인문학자를 찾아가서 자신이 그 계약 문제를 해결해주겠노라고 자청했다. 인문학자는 몹시 기뻐했다. 약속대로 회장이 교육부를 찾아가 자신이 사업비를 후원할 테니 자신에게도 그 인문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달라고 청했다. 교육부장관은 깜짝 놀라서 인문학자를 찾아 까닭을 물었다. 인문학자는 구겨진 남방과 면바지로 땅에 엎드려 쩔쩔매면서 감히 장관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장관은 더욱 놀라서 인문학자를 붙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대관절 왜 이러는 거요?”
그러나 인문학자는 더욱 밍구해하면서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문송하옵니다. 제가 인문학을 팔아서 인건비를 메꾼 것이옵니다. 하오니 이제부터는 저 회장님께서 인문학 소양을 갖추신 분입니다. 제가 어찌 다시 옛 모양으로 인문학 운운하겠습니까.”
듣고 나서 장관은 감탄하였다.
“참 미래가치를 알고 ESG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인이요 그려. 그는 회장이 되었으면서도 인문학 사업 투자에 인색하지 않으니 이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가치를 아는 것이요, 돈 되지 않는 인문학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했으니 이는 이해관계자 중심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한 것이요, 인문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스마트기기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자 하니 이는 디지털 전환(DX) 가속화 시대에 부응하는 경영철학이오. 그렇지만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사사로이 두 사람이서만 매매하고 아무런 증서도 만들지 않고 보면 후일에 반드시 지재권 시비가 일어나기 쉽소. 그러니 내가 정부 요인들을 모아놓고 증인을 서주고 미래인문학 선포식을 해야만 모든 사람들이 신용할 게요. 그리고 장관인 내가 서명을 해주겠소.”
이렇게 되어 장관은 마침내 정부 요인들과 각 대학 관계자들, 그리고 여러 대기업의 경영자들을 모두 모이라 했다. 회장은 오른편 높은 자리에 앉히고, 인문학자는 뒤쪽 의자 끝줄에 앉혀놓았다. 그리고는 선언문을 만들어 읽었다.
“재명 원년 12월 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원래 인문학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은 백수요, 니가 뭔 말 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애들 앉혀놓고 재롱잔치 하면서 하루 몇 시간씩 목이 쉬어라 외치고 푼돈 받는 것은 시간강사요, 계획서나 보고서 및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온갖 잡다한 일들을 도맡는 것은 연구교수라 한다. 강의료는 20년 전과 같고, 논문은 니 돈 내고 써야 한다. 이공계에서 1년에 200억, 500억짜리 사업 수주해서 할 때 인문학에서는 10억짜리만 줘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영어에 숙달하여 한국 고전문학을 하든 동양 고대사를 하든 전부 영어로 논문을 써서 A&HCI나 SCOPUS에 게재할 능력이 되어야만 그나마 정년 보장되는 자리라도 갈 수 있다. 사회적 확산도 해야 하므로 무급여로 기꺼이 시민 대상 강좌도 진행해야 하고, 가끔 야외 인문학 강좌를 위한 가이드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연구지원비로는 책을 쓰더라도 그걸 팔아서 수익을 얻는 등의 활동을 해서는 안되며, 연구비 수혜 논문을 쓰더라도 더 비싼 게재료를 내야 하므로 자기 주머니에서 추가로 돈 들어가는 일을 마다해서는 안된다. 국제등급학술지에 내는 천문학적인 게재료는 역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쓰고 교육부장관이 수결을 하고, 대학 총장들도 모두 서명을 했다. 이것이 끝나자 진행요원이 도장을 내다가 여기저기 찍었다. 그 모양이 마치 연구재단에 제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온갖 결제를 받아놓은 사업계획서 표지와도 같았다.
이것을 진행자가 다 낭독하고 나자 회장은 좋지 않은 표정으로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인문학이란 겨우 이것 뿐입니까? 내가 듣기로는 인문학이란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나 경영 콘텐츠 극대화, 혹은 사원들 앞에서 신년사 하면서 집어넣을 그럴듯한 구절 하나를 주거나 아니면 폴라티 입고 헤드셋 낀 채로 대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우리 폰의 이미지를 선전할 수 있는 거라고 들었소. 좀 더 잘 팔리도록 고쳐주십시오.”
이에 장관은 문서를 다시 고쳐서 썼다.
“인문학으로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에 무엇을 많이 붙일수록 좋다. 무슨무슨인문학, 무슨무슨무슨무슨인문학처럼 수식어가 길어질수록 돈을 벌기도 쉬워진다. 사람들이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AI시대의 인간가치 창출을 위한 거버넌스 정립과 알고리즘 확산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지속 가능한 미래가치 창출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주장하면 된다. 인문학은 폰을 만들면서 자기네 어플로만 프로그램을 깔 수 있게 해놓고, 안에 들어있는 사진조차도 마음대로 뺄 수 없게 하더라도 이것을 ‘감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인문학을 붙이면 천원짜리 물건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져다붙여서 만원에 팔더라도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아이덴티티가 충만한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인문학을 인문학으로 공부하거나 연구하려 들지 말고 음식에 MSG를 뿌린다는 기분으로 여기저기 경영 각처에 가져다붙이면 MSG 대신 ESG라고 우길 수 있는 명분도 생긴다.”
회장은 그 문서를 받자 혀를 내밀어보이며 말했다.
“제발 그만두시오. 맹랑합니다 그려. 나를 해로운 문돌이로 만들 작성이시오?”
이렇게 말하고 회장은 머리를 손으로 싸고서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자기 집안 자제들 그 누구도 문과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막았다.
…
….시팔….
공모 부문: 연구자 갓(망)생일기
작성자 : 박성호 (경희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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