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 밖의 가치 밝히기
장서란(서강대학교)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 삼아 대학원에 진학한 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동분서주하며 치열하게 공부했고, 빛나지계몽주의 이후 교양Bildung이란 삶을 형성하는 활동으로서의 도야陶冶로 다루어졌다. 그렇다면 교양교육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구자는 정연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사회화의 과정으로서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하고 전공 과목에의 노둣돌 역할을 넘어 삶에서의 지속적 활용 가능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1)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학생의 입에서는 어떨까? ‘비’전공 과목, 졸업을 위해 채워야 하는 것, 전공보다 쉬운, 혹은 쉬워야 하는 수업…… 저 하늘의 별처럼 그토록 빛나던 교양은, 대학의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풀이 죽는다.
그러므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자 하는 자는 우선 그것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학생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다. 그래야만 쓰러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양교육의 가치 증명이란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수없이 거쳐온 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테를 두른 콘텐츠들을 뒤로 한 채 어째서 돈도 안 되는 비주류인 문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가? 나의 경우, 답은 ‘나’였다. 문학은 내 삶을 움직였다. 문학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문학은 세계를 바꾼다. 나는 문학의 힘을 체감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문학 연구를 선택했다. 개인의 내면을 고양함으로써 스스로 실천케 하고, 이를 통해 외부의 현실을 바꾸는 것. 이것이 곧 교양의 가치가 아닌가? 문학의 가치가 틀 바깥에 있다면, 교양교육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안팎으로 끊임없이 울렸던 질문에 대한 답을 교양교육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다.
삶에 문학을 들이고, 문학을 통해 삶을 확장하기. 교양교육을 구성하며 목표로 삼은 것은 내가 지금껏 느낀 감각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교양 글쓰기 수업을 설계하며 현실의 문제, 만연하는 혐오를 다루었다. 문학이 이미 그것을 말했으나 현실은 답을 주지 않았으므로, 다시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그렇기에 혐오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혐오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일상화된 혐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했다.
나아가 혐오에 부딪히는 소설을 함께 읽었다. 베르베르의 소설을 통해 노인을 처분하는 사회에서 쓸모를 입증하려는 노인들의 발버둥을 보았다. 혐오에 부딪치는 시를 함께 읽었다. 한하운의 시가 한센병자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았다. 학생들은 문학을 읽고 감상문을 씀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인식한 후, 문학에서 구현되는 고통이 현실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 후 앞서 다루었던 시와 소설을 다시 읽은 학생들은 처음 읽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상처를 발견하고, 문학과 현실이 공유하는 문제를 자각했다. 읽고, 배우고, 쓰고, 탐구하고, 다시 읽은 학생들은 현실의 혐오 문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학술적 글쓰기를 완성했다. 학생들은 현실에서 문학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을 보여주었다.
대상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타자를 통해 나를 보고, 문제가 나와 분리되지 않음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학생들이 문학을 통해 이를 감각하고 실천하였다면 적어도 ‘나’의 교육적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교양수업은 전공이 아니기에 체계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 여백으로 인해 현실에 보다 맞닿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한 이들이라면 분명 상징 질서 밖에 있는 가치를 이미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밀고 나가자. 나 자신이 무엇보다 분명한 증거로서 존재하는 가치를 말이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일 다종다양한 가치를 통해 수많은 교양교육의 성좌를 그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1] 조미숙, 「대학 기초 글쓰기 현황과 개선 방안」, 『동남어문논집』 제42집, 동남어문학회, 2016, 272-27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