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시 내 교양
이진송 (이화여자대학교)
“교호야아앙? 이게 내 교양이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SBS)에서 배우 하유미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대사를 남겼다. 여동생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소리치는 하유미에게 불륜 상대가 “교양 좀 차리라”라고 말하자 격분한 것이다. 쾅! 두 개의 교양이 충돌한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말하는 것이 교양일까? 불의를 봤을 때 꼴사나워지는 것을 감수하고 냅다 우악스러워지는 것이 교양일까? 도대체 교양은 무엇이며, 내 교양과 네 교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교양교육은 이 지점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2024년, <문학과 삶>이라는 이름의 교양 강의를 맡았다. 내가 생각한 강의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개인의 고유함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염치와 품위를 지킬 줄 알고, 관습과 규범의 틀을 의심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것.’ 신규 강사답게 아주 거창했다. 막상 강의를 시작하니 혼란스러웠다. 학생들은 전공, 계급, 가치관, 삶을 인식하는 태도와 추구미 모두 달랐다. 문학에 대한 관심사나 기초 지식의 격차도 컸다. 예를 들어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그 거지가 존재하는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한다고 말할 때 반응은 엇갈렸다. 빛나는 눈, 반발하고 싶은 눈, 시험에 나오나 궁금한 눈, 필기하는 척 열심히 딴짓하며 웃음을 참는 눈, 앗, 저건 지루한 눈? 조급해졌다. ‘가르쳐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대부분이 1학년인 강의였으니, 입시 교육에서 경험한 문학과는 다른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의에 불타올랐다. 보아라, 이것이 대학이다! 아는 만큼 보이나니! 그야말로 스텝이 느린 파트너를 질질 끌고 가는 탱고 댄서처럼 굴었다.
물론, 서툰 강의에도 총명함을 빛낸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퍼붓는 지식을 영민하게 흡수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거나 과제물로 커밍아웃했다. 여기에는 ‘한번 보고 말 사이’로 끝날 수 있는 교양 강의의 산뜻함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그들에게는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그러다 강의 후반부에 짧은 밸런스 게임을 진행했다. ‘기억과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문학 작품을 독해하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잊기 vs.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학생들이 우르르 손을 들었다. 듣는 학생들은 웃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감탄했다. 정답이 아닐까 봐 두려워하거나 낯선 지식 앞에서 수동적인 얼굴과는 달랐다. 그제야 긴장으로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 트이는 듯했다. 강의의 이름은 문학과 ‘삶’. 문학이라는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 데에 지식보다 첨예하게 관여하고 조밀하게 연루되는, 삶이라는 개별성. 교양을 함양한다는 명목으로 나도 모르게 숱한 삶을, 완전히 내 인식 바깥으로 튀어 나가기도 하는 다채로운 욕망과 삶을 통합하고 계몽하고 균질화하고 싶었나 보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들이붓기 전에 충분히 묻고,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고유함, 공동체, 공존의 의미와 조건, 관습과 규범에 대한 인식 같은 것들 말이다.
방식을 바꾸었다. 문학 작품으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삶에서 출발하여 경험을 나누고,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교양을 탐색하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학과 맞닥뜨리기.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강의는 활기를 띠어 갔다. 전공이 아니라 교양이니 틀려도 괜찮고, 몰라도 괜찮고, 어리바리하거나 ‘주현영처럼’ 말해도 괜찮다는 말에 학생들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표 의사를 묻는 설문지에 X를 쳤던 학생이 손을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때의 기쁨, 자신의 전공과 문학을 연계하여 쓴 레포트를 읽는 신선한 설렘, 위헌적인 비상계엄령 해제 이후 교양을 듣는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인용하여 쓴 대자보를 봤을 때의 북받침…….
성과와 성취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양교육이 폭주하는 속도전에 잠시나마 지연을 유발하는 작은 턱이 되기를 바란다. 각자의 교양과 저마다의 당위가 있음을 인지하고, 충돌과 불일치를 응시하는 기회가 학생들에게 허용되기를 바란다. 그 탐색으로 문학에서 삶을, 삶에서 문학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교양이 삶에 진정으로 스며드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