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Vlog 📹 : 읽고 쓰고 산책하라 🏃♂️🏃♀️➡🤸♀️

작품명: 흑빵 멘보샤
같은 취향, 남다른 악의
당연히 박사를 가서는 안 된다. 내가 바보라도 되는 줄 아는가?
대한민국의 남쪽 지방에서 국문과는 이미 차례로 통폐합되는 중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더는 신규 인원을 뽑지 않을 상황이다. 그러니 국내 박사를 딴다 한들, 그것이 그다지 취업이라는 해피엔딩의 전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사이를 뚫고 결국에는 승리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힘써서 갈려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그게 그들이 매일 같이 편하게 욕하는 신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게 있어 서울의 학계 사람들과 지내는 일은 상당히 귀찮은데다 불편한 일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노인과 바다’ 뿐인 부산에서 왔으며, 그곳은 일단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쓰러져가는 구축 아파트 바로 옆에 괜찮은 아파트들이 늘어선 그 광경이란. 당장 내 동네만 해도 어업은 동남아 사람이, 힘쓰는 일은 중앙아시아 사람이 했고, 그 사이에서 뱃사람, 조폭, 소상공인, 아파트 거주자는 요트 소유주와 멀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 대다수는 가난하다고 국밥 든든하게 못 먹을 일이 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호사를 누릴 사람들은 아니었다. 산업이 쇠락한 상황에서 땅값 또한 싸기 때문이었다.
이 그럭저럭 괜찮은 곳에서, 내 오랜 친우들은 –혹은 이제 등져버린 이들은- 오늘도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고, 조선소나 호텔로 빠져나가 하루를 살아간다. 어릴 적 나는 문예만을 좋아했기에, 그리고 다행히 집안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홀로 상경하여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갔다.
그렇게 10년을 들여 서울에 와 학업을 하였으며, 어느 순간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문화시설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지방에는 문화 관련 업무를 익히기에는 그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였단 말이다. 부산에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비하면 그 수는 턱없이 적으며, 울산, 창원, 거제 등은 그 수가 실로 적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 지망생이 문화 업무를 익히려고 한다면 그것이 제도이든 산업이든 상당한 고난을 겪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지식과 기술이 서울에 밀집되어, 지방에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음도 의미할 것이다. 생선회도 기술이 있어야 함을 그대도 염두에 둘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실 꽤 많은 이들이- 의외의 부분에서 쉽게 소통이 되지 않았다. 공부에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문과의 경우 공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산업을 해석하고 그 생산 기술을 커리큘럼에 흡수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장르나 매체를 연구하고, 웹소설이나 게임 등 각종 생산 기술을 체제 내에 흡수한다면, 지방의 부유하지 않은 이들도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후반의 경우, 생각보다 많은 수가 이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다. 왜 문학 이외의 것을 해보아야 하며, 왜 생산 기술을 배워보아야 하는지, 그러니까, “왜 하던 것을 계속하면 곤란한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나로서도 당시에 그들이 왜 문학함을 고집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학‘도’ 하는 것과, 문학‘만’ 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데, 왜 새로운 것을 함께 해두지 않는가? 중앙에서 멀어서, 상경할 처지가 안 되거나 학교 공부 오래 잡기 힘든 학생들은 내버려 둬도 되는가? 그런 체제에 무슨 정치적 정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모든 것 이전에, 도대체 무엇으로 취직할 자신이 있기에 이렇게 나오는 건가?
더욱이, 내가 다닌 학교는 학생들이 마호가니 커피를 마시며 비교적 재질 좋은 옷을 입는 곳이었다. -혹은,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동네 커피만 마신 채 시장 옷 입고 살던 사람의 언행(아비투스)은 부적절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비교적 직설적으로, 억양 고저 심한 사투리로 묻노라면 선배들조차도 얼굴이 사색이 될 때가 있었다. “이게↗↗ 사회적 의미가-↗↗ 어떤 게 있는데요↗↗?? 그리고, 이거 카믄 먹-고 살↘ 수는↗ 있습니까↗↗?” 위로 올라가도 고급관료는커녕 토호조차 없는 경남 공업지대의 말투란 종종 이렇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 문득 학교 다니는 게 따분해졌다. 나는 졸업을 한 뒤 공부를 대충 접어두었고, 병상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몇 년을 보냈다. 다행히 사람이 죽어도 눈물이 나지 않을 만큼, 내 할 일을 다 하여 보내드렸다.
一
시일이 지났다.
그간 소일로 비평을 하여 작게 돈을 벌었고, 작가 일을 하고자 하여 적당한 플랫폼에 들어갔다. 이대로 작가 일을 하고 비평을 종종 쓰면서 살아가면 충분할 것도 같았다. 아니, 사실은 그게 좀 더 옳았다. 웹소설은 주5일 연재를 기본으로 하기에 이미 바쁜 일이다.
그러나 내 2026년의 새해를 보며 다짐하건데, 나는 박사를 가야겠다. 돈만 들고 시간도 날리고 별로 얻는 게 없을지라도 나는 가야겠다. 그럴 조건도 되지만,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드디어 ‘덕후로서 치이는’ 텍스트를 찾았기 때문이다.
천품이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드디어 공부하고 싶은 대상을 세계로부터 하사받았기 때문이다. 짧게 회고하건데, 내 석사 기간은 1년에 불과한 타이완 유학 경험에 모조리 붙잡혀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짱깨’라고 말하는 중화(中華)가 세간의 편견보다 훨씬 대단함을 느꼈고,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태워 먹었다. 내 지도교수님께서는 무협한다는 학생을 상당히 너그럽게 받아주신 뒤, 예상보다 엄격히 지도하셨다. ‘사람’ 만드는 데 성공하신 것이다.
물론 그 제조 과정은 희극보다 비극에 가깝고, 다시 하자니 속이 좀 쓰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연구하고 싶을 만치 화려한 텍스트의 세계를 ‘이미’ 맛보았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 작가의 웹소설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022)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해당 텍스트는 ‘책 빙의물’로 판타지 소설에 빙의된 주인공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마법명가에 괴롭힘당하는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을 쓰며, 그 과정에서 ‘상태창’ 같은 인터넷 신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작가는 점점 그 마각을 드러낸다. 판타지 세계인 줄 알았던 곳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기말 독일이고, 그 안에서 적은 본격적으로 고증된 사이비 권력자 집단이며, 그들이 꾸미는 파시즘적 음모를 막아내어 제국의 궤멸을 막아내는 것이 주된 스토리로 변화한다. 그리고 한 500화 넘어가기 시작하면 ‘상태창’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대신 나오는 것은 철학, 문학, 오컬트, 혹은 밀리터리 따위다. 처음에는 <파우스트>와 <성경> 정도 인용되기에 약간의 허세 정도인 줄 알았는데, 조금 지나니 푸코 에코 데리다 익숙한 이름들 예쁘게도 올망졸망 나오는 바이다. 텍스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공의 수위를 보니 아무래도 작가가 공부 꽤나 한 사람인데, 덮자니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캐릭터 간의 관계성이 매우 맛있어 끊지를 못하는 바이다. 폰으로 읽자니 번잡하여 눈 아픈데 그래도 결국에서는 예뻐서 보게 되는 문장과, 사람 뒷목 잡게 하는 ‘환난’ 연속의 전개는 덤. 혹자 말로는 탁월한 미적 경험은 마약과 같다는데, 내 이제야 그 말을 알아듣겠다.
물론 사람들은 물을 수 있다. 단순히 텍스트를 하나 마음에 들게 되어 연구를 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냐고.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협을 전공하던 석사 시기에도 단순히 그것이 좋아서 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느낀 건 일종의 계시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당시가 기억이 잘 안 날 수 있겠지만-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온 한국인은 ‘짱깨’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중국의 것은 뭐든지 열등한 것만 같았고, 치고 올라오는 기술이란 것도 빈틈투성이인 듯했다. 실제로 당시에 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확신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레이시즘이 극심했기에 조선족은 범죄자라는 소리에 너무도 쉽게 확신을 가졌으며, 대림 같은 데는 무서워서 발도 들이지 못했다.
나 또한 본래는 그 담론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타이완에 직접 가보니,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친절했다. 날씨는 덥고 습하지만, 그들의 산하는 향기를 내뿜는다. 나는 그곳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를 잡으면서도, 매끼 천하의 진미를 먹어치우며 공부를 해나갔다. 그렇게 1600원에 매끼 행복을 느끼다, 나는 그들의 책을 문득 읽어봤다. 아아, 신이시여, 루쉰을 정점으로 문학하는 나라에게, 우리가 무슨 생각으로 무지함을 논하고 있나이까. 김용은 탁월하고 왕가위는 아름다워 좋았다.
그렇게 홀린 듯이 타이완에서 공부를 하고, 중문과를 내달리고, 무협을 공부하고 공부하였다. 나는 내가 본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짱깨’에 근거가 없다면, 내가 본 화려하여 그럴듯한 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곳에도 나쁜 것만큼 좋은 것이 있어 우리와 실상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우리’는 왜 전혀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가?
물론 내가 국문과에서 그것을 묻고 따지며 석사 논문을 쓰는 내내에도,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 대학원 동료들은 레이시즘이 나쁘다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중국인 유학생에게 그 이론적인 ‘환대’를 실천으로 베풀어주지는 않았다. 딱히 차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은 걸지 않았다는 말이다. 일본인과 서양인에게는 말을 좀 더 친절하게 걸어주었던 것 같다. (동아시아론을 한다는) 교수님들이 중국인 유학생에게 무엇을 물어 어떤 정보를 구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 시절에 무협을 하는 것은, 특히 동아시아 시야에서 무협을 한다는 것은 내 근본적인 물음을 해소해주는 지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 나는 <마차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웹소설이 문학에 도전하고 그에 걸맞는 내용을 갖추는 순간. 혹은, 그 내용을 갖추면서 웹소설로서 도전적인 ‘작전’을 펼치는 순간. 그것은 이와 유사한 다른 텍스트와 읽을 때 새로운 지평을 드러낸다. 그것은 주제 면에서 동아시아의 무협적인 텍스트들과 교호하는 지점이 있고, 굳이 거기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동아시아 역내의 판타지 텍스트들과 서로 독특한 논의거리를 형성하는 지점이 있다. 가깝게는 같은 한국-판타지-웹소설인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2019)일 것이고, 멀게는 중화권에서 만든 게임인 <리버스 1999>(2019) 등이 있을 것인데…… 이 지점은 구구하여 줄이도록 하겠다.
다만, 이 텍스트들이 빚어내는 특정한 미학적 경험은 한 번 (국문학과의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욕구를 불태우게 했고, 나는 그것을 위해 내 위대한 지도교수님께 타 학과로의 전과를 감히 요청드렸다. 지도교수님은 너그럽게 내 결례를 용납하셨으며, 나는 이제야 내가 지금까지 쌓아둔 문제들을 한 번 해결해보고자 했다. 어쩌면, 이 시대에 당연히 진행되어야 하는 일을 이번에 즐겁게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디 모든 학제는 때가 되면 혁신을 거쳐야 하지 않는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부르디외가 <호모 아카데미쿠스>에서 다룬 것이다.
이때 지인들의 도움은 하나하나 절실하기 그지없었음을 밝히겠다. 조그마한 그룹이라도 내 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혹은 관련 업무를 해볼 수 있게 지면을 내주지 않았다면, 살아가는 일이 썩 답답했을 것이다.
一
문제는 이 지인 중에도 마귀 같은 양반이 하나쯤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마차살>이 마음에 든다길래, 한 지인이 소설에 언급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일흑빵’으로 멘보샤를 만들어 올해 겨울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하였다.
이때 ‘독일흑빵’이 꽤나 생소할 것인데, 정말이지 쉽지 않은 물건이다. 쿰쿰하며 시큼한데다 뻑뻑하여 먹기 쉽지 않은 검은 호밀-발효-빵.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먹는 빵이고, 아무래도 우리네 청국장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긴 하다. 다만 이탈리아에서는 가난한 아이의 검은 빵을 자신의 흰 빵과 바꿔먹었다는 미담이, 어린 성인(聖人)의 전기에 버젓이 소개된다는 점을 밝히겠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돈 보스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현지에서도 맛있는 음식은 아닌 것 이다.
그런데 이 ‘독일흑빵’은 <마차살>을 꿰뚫는 설명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왜 이렇게 까칠한가’에서 시작하여, ‘독일은 왜 이런가’에 대한 깨달음을 구체적으로 구현해주기 때문이다. 독문학과가 기함할 소리라는 것은 알지만, 솔직히 알잖는가, 칸트 헤겔 마르크스의 그 뻑뻑하여 목에 막히는 문장이라거나, 니체가 갑자기 독일 음식을 먹으면 사람이 썩으며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야 인생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라거나. (<이 사람을 보라>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다.)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은 공부만 하는 인생이 답답하다고 하던데, 음……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 선생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때 ‘독일흑빵’은 내가 생각하기에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다. <마차살>이라는 최애 작품을 잘 설명할뿐더러, 우리가 선망하는 대상인 유럽에 대해서도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지 못함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타자를 잘 모르는 우리’는, ‘타자를 멋대로 상상하는 우리’에 굉장히 근접해 있으며, 이는 의외로 이론의 유무와 데이터의 집적이라는 단순한 문제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공을 들여 지인들에게 ‘독일흑빵’을 먹였더니, 그 대가가 흑빵 멘보샤로 돌아온 것이다. “흑빵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어올려 보고 싶었어요.” 이 양반이 뭐라는 건가 진짜. 하지만 정성스럽게 해준 요리라 억지로 먹었으며, 안타깝게도 요리는 정말이지 먹을만 했다. 기술력이란 게, 혹은 노하우를 가지고 특정한 행동을 해본다는 게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이 나날을 나는 문학자인 ‘우리’에게도 기술력이, 혹은 그 기술력을 쌓아올릴 집념과 탐구가 진심 어린 즐거움을 동반한 채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 잘 튀긴 흑빵과 새우의 열 받는 콜라보를 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이 ‘대단한’ 맛을 어찌 홀로 느끼겠는가. 말로만 들어서는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을 터이니, 어떤 것은 경험하여야만 ‘그 너머’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것이다. 고로 내 따뜻한 –그리고 친우를 구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하건데, 당신들이 부른 토요일 발표자로서 –그 쿰쿰하고 시큼하여 사람 소름 끼치게 하는-흑빵 한 덩어리를 여러분과 나누어 먹을 것임을 천명하겠다.
박사 진학 기념으로 말이다.
공모 부문: 나는 어째서 대학원생이 됐는가
작성자 : 주.간.무.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