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하는 마음] 당신의 ‘인생시’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인생시’는 무엇인가요?

전지윤(한국교육과정평가원)

4년 전 강단에 처음 섰던 순간부터 잠시 강단을 떠나 있는 현재까지를 되돌아본다. 나는 현대시교육 전공자이다. 2021년 1학기부터 4년간 강의를 하는 동안, 모교에서는 국어교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을 살린 현대시 강의를 주로 해 왔고, 타교에서는 주로 ‘글쓰기’라는 명칭이 붙은 교양 과목 강의를 주로 해 왔다. 그러다 2022년 2학기에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감사하게도 ‘우리문학의이야기’라는 강의를 맡게 되어 처음으로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현대시를 가르치게 되었다. 

한 번쯤은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로 구성된 강의실에서 현대시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강의 설계부터 난관이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는 전체 학과가 이공계 계열로 이루어진 학교였기 때문이다. ‘공대생들에게 문학 가르치기’. 이것이 나의 미션이 된 것이다. 국어교육 전공생들을 가르칠 때의 목표가 ‘중등 임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업하기’였다면, 비전공자인 공대생들을 가르칠 때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 끝에 최종 목표로 삼은 것은 공대생들에게 ‘긍정적인 시 경험을 통해 평생 기억에 남을 시 한 편 남겨주기’였다. 

2022년 9월의 첫 번째 목요일, 마흔여섯 명의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현대시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5주의 강의는 다음과 같이 꾸려졌다. 1주차에 ‘우리는 한 학기 동안 현대시를 배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2주차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제대로 된 문학 경험이 없을 학생들을 위해 시를 읽기 위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가르쳤다. 3주차부터 5주차는 ‘시 경험 나누기’ 개인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는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기 전에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시 경험을 일깨우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시, 가장 싫어하는 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 중 한 편을 골라 다른 수강생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6주차부터 11주차는 ‘주체적 시 읽기’ 활동을 진행하였다. 매주 ‘나, 너, 세계, 사랑, 이별, 청춘’이라는 주제로 묶인 세 편의 시가 담긴 활동지를 배부한 후, 해석 질문을 중심으로 먼저 개개인이 감상을 작성하도록 안내했다. 개별 감상 작성이 끝나면, 조별로 감상을 공유하며 해석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주체적 시 읽기’ 활동이 끝난 후 12주차에는 조별로 그간 다뤘던 현대시 중 한 편을 골라 이야기로 바꾸어보는 ‘시 풀어쓰기’ 활동을 진행하였다. 시 풀어쓰기는 원작 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의적 표현 활동이기도 하다. 13-14주차에는 조별로 시 풀어쓰기 결과물을 조별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후,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결과물에 댓글로 감상평을 쓰도록 안내했다. 매주 다양한 활동들로 학생들과 만나다 보니 어느새 겨울이 왔고, ‘우리문학의이야기’ 강의는 종강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쉽고 편한 강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 안에서 나와 학생들이 함께 채워간 알찬 강의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참 많았던 강의였다. 하나의 예를 소개하자면, 김기택 시인의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이라는 시를 가르치던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해석 질문이 적힌 활동지를 주고, 개별적인 감상을 적은 후 조별로 감상을 나누도록 안내하며 순회 지도를 하고 있던 나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해석하기가 어려운가요? 왜 다들 심각한 표정이에요?”

“교수님…. 아무리 생각해도 시 제목부터 이해가 안 가서요. 일단 풀벌레들이 귀가 정말 있을까요? 그리고 찾아보니 풀벌레는 인간과 청각 구조가 달라서 진동으로 소리를 느낀다는데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그리도 심각하게 토론 아닌 토론을 하던 학생들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에게도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경험이 되어준 ‘우리문학의이야기’ 강의는 학생들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삭막한 공대 속에서 문학을 공부하게 되어 한 학기 동안 행복했습니다. 잠깐이나마 답이 없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되어 제 생각을 마구 펼칠 수 있었습니다.”, “수업 내내 너무 재밌었고 수업 가고 싶단 생각이 든 수업은 처음이었습니다.”와 같은 학생들의 강의 소감에서 그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삶을 살아가면서 ‘시’를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나의 강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한 부담감 혹은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었다. 그래서 ‘나, 너, 세계, 사랑, 이별, 청춘’이라는 주제를 정할 때도, 각 주제에 맞는 시 세 편씩을 고를 때도,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활동을 구안할 때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의미 있었음을, 종강하던 날 수줍게 다가와 건넨 한 학생의 감사 인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 한 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이 수업을 들으면서 ‘인생시’라고 말할 수 있는 시를 갖게 된 것 같아요. 강의 시간에 나온 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들도 찾아 읽게 되었고요. 그게 이번 학기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서, 꼭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긍정적인 시 경험을 통해 평생 기억에 남을 시 한 편 남겨주기’. 이것을 강의 목표로 세웠던 나는 마음 한 자락에서 뿌듯한 성취감이 벅차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 강의를 들었던 마흔여섯 명 중 누군가에게 “당신의 인생시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시 한 편을 꺼내어 놓을 수 있기를, 딱딱한 일상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줄 한 편의 시를 가진 멋진 어른이 되기를, 온 마음을 담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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